남들에게 평범한 여행, 우리에겐 기적
07 / 25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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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플로리다 디즈니 월드에서 오리건 포틀랜드로 가던 비행기가 비상착륙했다. 자폐를 가진 한 소녀가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아이와 비행기 타보는 게 제 소원이에요." 예나 엄마는 행동장애가 심한 예나와 여행을 꿈꿀 수 없었다. "남들에게 평범한 여행이 우리 가족에겐 꼭 기적 같아요. 예나와 이렇게 멀리 온 적은 처음이에요."
19일 한미특수교육센터에서 주최한 2박 3일간의 샌프란시스코 여행에 발달장애 열여덟 가정 50여 명이 참가했다.

오랜만의 외출에 들뜬 기색이 역력한 대니얼은 소리를 지르며 처음 보는 친구들을 끌어당겨 안았다. 더운 여름 날 대니얼의 양손엔 항상 목장갑이 끼워져 있다.
아들의 손을 꼭 부여잡은 어머니 김유숙씨는 "하루종일 물어뜯는 손톱에 손이 남아나지 않는다. 우리 아들이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해 행동이 먼저 나가곤 한다. 좋은 점이라면 엄마한테 애정표현도 적극적"이라며 웃어넘긴다.

샌프란시스코 대표 관광지 피어 39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유람선 갑판에 올라간 예나가 불안한 듯 엄마의 손을 잡아끌자 예나 엄마는 풍경을 뒤로하고 밑으로 내려간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예린이의 마음은 안타깝다. 
"같이 사진 찍으면 좋은데 아쉬워요. 배가 빨라서 무서운가 봐요." 동생만 챙기는 엄마에 15살 예린이는 오히려 '미안하다'고 얘기한다.

"우린 가족이잖아요. 내가 더 동생을 잘 챙겨줘야 돼요. 사진은 한별 언니랑 찍으면 돼죠." 예린이가 미소를 띠며 옆에 있던 한별씨의 팔짱을 낀다.
안개 자욱한 금문교가 나오자 발달장애가족들은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여행 첫날 버스 탑승을 거부해 어머니를 애태웠던 지수씨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카메라 앞에서 눈웃음을 보인다.

"올해 30살인 우리 아들 덕에 할말이 많네요." 

지수씨 어머니는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저녁 일정이었던 소아발달전문의 박현선 박사님과의 만남은 16명 엄마들의 수다 현장이 됐다. 북가주에 거주하는 다섯 가정도 합류했다. 

"예전엔 나만 잘하면 아이가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약 먹이려 억지로 팔다리를 묶어 놓은 적도 있었고 양육 방법에 대해 남편과의 갈등도 수도 없었죠." 

지수씨 어머니의 지난 이야기에 모든 엄마들이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간의 설움을 알아주는 것은 서로뿐. 수년의 힘든 세월을 거친 엄마들은 이제 막 발달장애진단을 받은 자녀를 둔 초보엄마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예전엔 내 아이가 괜찮다는 얘기가 듣고 싶어서 병원 쫓아다녔던 거 같아요. 근데 결국은 아이를 믿고 오래도록 기다려주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내 아이, 내가 믿고 기다려 줘야죠." 

종완 엄마가 담담하게 웃음 지으며 얘기한다. 대부분 엄마들이 오직 자녀를 위해 한국에서의 삶을 접고 미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자폐아에 대한 의식수준과 치료기술이 한국에 비해 발전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여전히 감당할 게 많다.

케빈 마 특수체육교사는 "한인 사회 내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며 "무심코 한 말에 장애아 가정은 큰 상처를 받는다. 장애가족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모든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강조했다.

몬트레이 해변을 따라 내려오던 버스는 안개가 뿌옇게 서린 '버드 록 비스타 포인트(Bird Rock Vista Point)'에 정차했다. 버스에서 내린 엄마들은 잠시 아이를 뒤로하고 엄마들끼리 같이 사진을 찍는다. 

"이게 얼마 만인지…." 한 엄마가 찍은 사진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띤다. 사진 속 함박웃음을 짓는 엄마들의 모습은 꼭 소녀 같다. 

"이렇게까지 아이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또 있었을까 싶네요." 영준 엄마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1년에 단 한 번. 여행을 함께한 발달장애가족들이 나눈 것은 그간의 홀로 져야 했던 시선과 책임이다.

 






<미주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