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면 좀 어때요…함께라면 괜찮아요”
지난 22일 한미특수교육센터에서 주최한 1박2일 여행에 참가한 발달장애 가족들이 샌타바버러 관광명소인 올드 미션(Old Mission)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들과 여행은 처음이네요.” 행동장애가 심한 찬희(11)군 가족에게 여행은 그저 꿈. 아들 치료차 미국 온 지 4년째, 찬희 아빠의 꿈이 이루어졌다.
22일 한미특수교육센터(KASEC)가 주최한 1박2일 샌타바버러 여행에 발달장애 열여덟 가정 53명이 참가했다. 오픈뱅크, 왕글로벌넷, 파바월드 등 한인단체들이 후원의 손길을 보냈다.
굽이치는 해안 언덕을 따라 먼저 도착한 ‘피스모 비치(Pismo Beach)’. 오랜만에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션(18)군이 엄마 손을 잡는다. “우리 아들, 5초 어텐션(집중훈련)부터 시작했어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의젓해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션의 엄마는 고개를 젓는다.
션은 4살 때 자폐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보통 아이들 못지않게 학습능력은 뛰어났던 그는 올가을 캘스테이트노스리지(CSUN)에서 신입생으로 캠퍼스 생활을 시작한다.
“문제는 혼자 손톱도 못 깎는다는 거?” 션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공부 빼고 씻는 거, 먹는 거 나머지 모두 24시간 제가 옆에 붙어서 돌봐요. 덕분에 이 나이 먹도록 아들만 보고 사네요.”
점심시간. 식당 테이블 위로 피터(27)씨가 두둑한 종이 뭉치를 꺼내 다른 가족들의 얼굴을 그린다. 7살부터 시작한 그림은 피터씨에게 세상과 유일한 소통 창구다.
피터씨 어머니는 “5분도 가만히 못 앉아있는 아들에게 어릴 적 교회 지인이 사다준 도화지 2000장은 아들의 꿈을 찾아줬다”고 말했다. 하루 6시간까지 꼼짝없이 앉아 그림을 그린다는 피터씨의 꿈은 캐릭터를 그리는 화가다.
“다르면 좀 어때요. 아들이 이 땅에 나온 이유가 있으리라 믿어요. 우리 자녀들이 만들 세상 기대해요” 피터씨 어머니가 다른 엄마들을 격려한다.
이날 저녁, 아이들을 수영장에 맡긴 엄마들은 오랜만에 수다 삼매경이다. 엄마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녀의 미래다.
하나 둘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아이들, 하지만 여전히 냉담한 세상 앞에 엄마들은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심정이다. “여행 중에 ‘Autism(자폐증)’이 적힌 우리 단체복을 보고 아이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마음이 아프더라.” 벨라 엄마가 입을 열자 다른 엄마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케빈 마 특수체육교사는 “장애 아동들을 보고 부모들의 잘못으로 아이가 이렇게 되었을 거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면서 “이런 편협한 시선부터 버리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 사회 속에서 설 곳을 찾게 해주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튿날 해가 밝자 도착한 곳은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대저택 ‘허스트 캐슬(Hearst Castle)’. 저택의 우람한 자태에 가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관광명소도 발달장애가족에겐 넘어야할 장애물이다. 앞에 놓인 수많은 계단들이 문제였다. 미셸(13)양이 힘든지 갑자기 주저앉아 때를 쓴다. 엄마 3명이 붙어 어르고 달래서야 다시 발걸음을 띈다.
연신 미안하다는 미셸 엄마에 다른 엄마들은 뭐가 미안하냐며 오히려 나무란다. 미셸양의 엄마는 “말을 못하는 딸은 화가 나거나 지루하면 자해를 한다”면서 “생후 3개월 때부터 딸을 데리고 다닌 병원길이 우리에겐 여행길”이라고 안타까운 미소를 띤다.
미셸은 선천적으로 다운증후군과 구순구개열(윗입술과 입천장이 모두 개열된 질병)을 모두 가지고 태어났다. 말을 못하는 건 물론 식사도 위장에 연결된 호스로 해야 한다.
엄마는 딸의 질병이 모두 자신의 탓인 건만 같다. 미셸양 엄마는 “44살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다. 나쁜 것만 물려준 거 같아 항상 미안하다”면서 “지금처럼 건강하게만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딸을 끌어안는다.
“다들 가족끼리 모여주세요.”
허스트 캐슬 앞에서 소장님의 부름에 흩어져있던 아이들이 곧장 엄마에게로 뛰어간다. 엄마들은 달려오는 아이들의 손을 잡는다. 두 손을 맞잡은 가족들은 오늘도 날선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딛는 연습을 한다.
<미주 중앙일보>